지난 12월 조시에게 특별한 생일 선물을 받았다. 영국 캠브리지 근교에 위치한 야생 고슴도치 동물 병원 방문! 쉐프레스(Shepreth)라는 곳에 있었는데, 말 그대로 아픈 야생 고슴도치들이 머물며 치료받는 병원이다. 대부분 캠브리지셔(Cambridgeshire)에 사는 주민들이 정원이나 길에서 고슴도치들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곳으로 연락해 맡긴다고 한다.
많은 이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들릴 만한 이 병원에 대해 알게 되고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조시와 그의 지인 덕이다. 이곳에서 사진 봉사를 했던 조시의 지인이 조시가 병원 관계자에게 문의할 수 있도록 중간다리 역할을 해준 것이다. :) 요즘 들어 내가 (우리의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동물들에 대해 배우고 뭔가 하고 싶었던 걸 알고, 조시가 준비해준 계획!
아침 식사 후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캠브리지 근교의 쉐프레스로 떠났다. 이날 하필 기차 사고가 있어서 해당 라인이 지나는 기차역에서 많은 기차가 취소되고 지연됐다. 우여곡절 끝에 Shepreth Wildlife Park 옆에 붙어 있는 Shepreth Hedgehog Hospital에 도착했다.
목차
Shepreth Hedgehog Hospital (쉐프레스 고슴도치 병원)
우리가 방문했던 당시엔 무려 59마리의 야생 고슴도치가 치료 및 휴식 중이었는데, 아마도 60마리까지 수용이 가능한 것 같았다. (수련 수의사분이 '병실'이 거의 다 찼다고 했으니 말이다). 각각의 고슴도치들은 넉넉한 사이즈의 투명 플라스틱 박스 속에 정성스레 지어진 신문지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사료와 물도 박스 안에 배치되어 있었고, 매일 박스가 소독되고 신문지 집이 교체된다고 한다.
고슴도치 병원에 간다는 걸 알고 병원으로 향할 때, 고슴도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과 '킁킁대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울까'하고 상상한 순간이 있었다. 야생동물을 위한 병원 자체에 대한 무지도 있었고,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감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순진한' 기대는 병원에 도착하고 아픈 야생 고슴도치들이 지내고 있는 방을 보면서 없어졌고, 진지한 배움 모드로 열심히 설명을 듣고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사진을 찍었다. 찍고 싶은 만큼 찍으라고 말해주시긴 했지만 눈치껏 적당히... ;)
1. 고슴도치 병원의 병실
고슴도치 병실은 아래 두 장의 사진에서처럼 한 방 안에 양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박스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고, 해당 고슴도치가 몇월 며칠에 들어왔는지와 수련 수의사와 자원봉사자분들이 지어준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 방에 발을 들인 순간 기분이 오묘했다. 이 많은 고슴도치 중 일부는 치료 후 회복 중이고, 일부는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슴도치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이 시간엔 많은 움직임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종종 쿵쿵 소리가 나거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쿵쿵 소리는 고슴도치가 신문지 집 안에서 움직이다가 가시가 박스에 닿는 소리였고, 기침 소리는 아픈 고슴도치가 콜록콜록하는 소리였다. 대부분 자고 있거나 신문지 집 안 어두운 곳에 있어서 투명한 박스 너머 고슴도치를 볼 수는 없었다. 눈에는 안 보여도 이 50여 마리가 각자 방에서 휴식 중인 걸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너무 귀여운데, 또 얘네들이 아파서 여기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기침 소리가 사람 기침 소리랑 너무 흡사해서 신기하고 또 귀여운데, 아프다니까 마음이 아프고... ㅠㅠ 그 와중에 이 모든 고슴도치한테 이름을 지어준 스태프분들이 스윗하기도 하고..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잉 쬐끄맣고 소중한 귀여운 고슴도치들 아프다니 맴찢인데, 또 그래도 계속 귀여워 ㅠㅠ.... 아프디망.... 🦔🤎" 이런 느낌...?
2. 야생 고슴도치 진단에서 치료, 회복까지
사진으론 찍지 못했지만, 현미경으로 이곳에서 치료받는 고슴도치들이 자주 갖는 병균을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이후로 현미경을 본 적이 없어서 급 과학 수업 시간으로 시간 여행 하는 것 같았다). 야생에 사는 고슴도치들이 Ringworm이라는 전염 피부병이나 Lungworm이라는 폐선충에 자주 걸린다고 한다. 야생 환경에 익숙한 만큼, 어느 정도의 병균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또 자연 회복이 된다고 하지만, 정도가 심하면 이곳에 온다고 한다.
고슴도치마다 의료 기록 차트가 있어서 언제 얼마나 치료식이 나갔는지, 얼마나 먹었는지, 몸무게는 얼마나 되는지, 다음 치료식/주사는 언제인지를 확인할 수 있고 업데이트해야 한다. 회복 중이다가도 또 콜록콜록 소리가 들리면, 그것도 이 차트에 기록해서 다음 담당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1.5~2시간 동안 고슴도치에 대해 정말 많은 정보를 얻었다. 이전엔 나와는 깊게 상관없을 정보라고 생각해왔지만, 한 달이 넘은 지금도 그날이 생생할 정도로 좋은 시간을 보냈고 배웠다. 물론 나는 요즘 동물 보호를 위해 행동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겨서 그럴 수도 있지만, 딱히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충분히 흥미를 느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억나는 정보들을 아래 적어보았다. :) 귀여움 주의!! 🦔❣️
3. 수련 수의사에게 들은 고슴도치 지식
- 고슴도치는 뭔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일 때 쉭쉭 거리는 소리를 낸다. (예: 자고 싶은데 방해받는다고 느낄 때)
- 고슴도치는 행복/만족하면 꿀꿀 소리를 낸다.
- 고슴도치는 아프면 콜록콜록 기침 소리를 내고 코가 까칠까칠하다.
- 건강한 고슴도치는 완전한 공 모양으로 몸을 말아 가릴 수 있다.
- 고슴도치의 적정 몸무게 범위가 정해져 있는 편은 아니다. (어떤 고슴도치는 600g이 넘어도 건강하고, 어떤 고슴도치는 같은 600g인데 다소 뚱뚱하다는 판정을 받기도 한다).
- 병원에서 치료 중인 고슴도치들을 위한 먹이는 슈퍼마켓에서 판매 중인 강아지 사료 + 고양이 사료!
- 매일 한 번씩 새로운 신문지 집을 지어주는 데 메트로 신문 5부가 필요하다 한다.
- 치료제는 액체로 된 약을 음식에 섞어서 주는데, 먹지 않을 경우 주사로 주입한다.
- 주사를 놔야 할 때는 고슴도치의 가시털을 꼬집듯이 팽팽하게 해서 안쪽 피부가 최대한 얇게 들릴 수 있게 한다. 이렇게 하면 주사를 놓기 쉽고 고슴도치에게도 최대한 덜 아프기 때문이다.
- 회복한 고슴도치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병원에서 오랫동안 지낸 고슴도치의 경우 자원봉사자들이 자택에서 임시 보호를 하며 적응 기간을 거친다.
- 야행성인 고슴도치지만, 엄마 고슴도치들은 새끼 고슴도치들을 위해 좀 더 나은 보금자리를 지어야 하거나 본인 끼니를 해결할 시간이 필요할 때 낮에 눈에 띄기도 한다.
- 공 모양을 만들 수 없을 만큼 통통하다고 판정받은 고슴도치에겐 건강하게 회복하기 위해 다이어트 식단을 준다.
- 고슴도치에게 큰 위협 중 하나는 자동차다. 몸을 말아 가시 공을 만드는 자연 방어 체제는 달리는 자동차엔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ㅠㅠ
- 야생에서 나뭇더미를 태울 일이 있다면, 불을 지피기 전에 꼭 더미 안에 고슴도치 가족들이 지내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 이웃해 있는 가정집 사이가 꽉 막혀 있다면, 막힌 울타리 틈 사이로 구멍을 파 고슴도치들이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주면 좋다. 🤎
생각해 보니 고슴도치를 실물로, 그것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고 소중한 (물론 스스로는 크고 강하다고 생각한다지만) 이 생명체들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너무 따뜻했고, 야생 고슴도치 전용 병원이라는 이런 기관의 존재 자체도 인상적이었다. 덤으로 아픈 야생 고슴도치들을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주민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냥 모든 것이 귀염뽀짝하다. 👐🦔🤎
바쁘셨을 텐데도 우리가 방문하는 것을 허락해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신 담당자분에게 감사했다. 한 시간 반 정도 있으면서 고슴도치에 대해 많이 배웠고, 내 역량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 고슴도치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4. 쉐프레스 고슴도치 병원의 고슴도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병원 방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감사의 표시로 소액의 기부금을 넣은 봉투를 전해드렸다. 혹시 이 글을 읽어주신 분 중 쉐프레스 고슴도치 병원 일과 고슴도치들의 회복에 기여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아래 방법을 추천한다. 🥰🥰
1. 온라인 기부/펀드레이징
JustGiving이라는 펀드레이징 사이트를 통해 쉐프레스 야생동물 보호 자선단체 (Shepreth Wildlife Conservation Charity/SWCC)에 기부할 수 있다. 비정기/정기적으로 개인 기부할 수도 있고, 여러 명이 한꺼번에 기부하고 싶다면 자선기금 페이지를 만들어서 기부금을 모금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모금액이 쉐프레스 고슴도치 병원 운영에 사용되긴 하지만, SWCC 운영의 다른 부분에 쓰이기도 한다. 기부할 때 Hedgehog나 hospital을 언급하면 고슴도치 병원에 전액 사용된다고 한다. (링크)
2. 아마존 웹사이트에 적힌 위시리스트 아이템 구매
SWCC 쉐프레스 고슴도치 병원에서 아마존 쇼핑 사이트에 등록해둔 위시리스트가 있다. 이 위시리스트엔 병원에서 고슴도치 치료에 이용되는 다양한 물품들이 등록되어 있어서 기부금 대신 물품 지원도 가능하다. 아이템 선택 후 결제 페이지로 넘어가면 받는 이 주소에 'SWCC Shepreth Hedgehog Hospital’s Gift Registry Address'가 자동으로 뜬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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